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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은 더 이상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가? – 의식, 환청, 그리고 상호주관적 실재

해부루 2025. 1. 21. 17:12



나는 어렸을 때 교회를 다니는 친척 형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 “성경을 보면 신이 사람들에게 직접 말하는 장면이 나오잖아? 근데 왜 지금은 신이 사람들에게 직접 말하지 않아?”



형은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조금 난감한 듯 대답했다.

> “지금 세상에서 신이 갑자기 직접 말하면 사람들이 놀라지 않겠어?”



어린 나에게 그 대답은 성에 차지 않았다. “아니, 그럼 예전 사람들은 왜 안 놀랐는데?” 같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당시에는 더 깊이 캐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질문은 내 안에 계속 남아 있었다.

왜 성경 시대에는 신이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했고, 지금은 그렇지 않을까?
신이 말하는 방식이 바뀌었을까?
아니면 사람들이 신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걸까?

나중에, 나는 줄리언 제인의 *『의식의 기원(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을 읽으면서 이 질문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발견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1. 고대인들은 정말 신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 ‘이중 뇌 마음’ 이론

줄리언 제인은 현대인과 고대인의 ‘의식’이 다르게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중 뇌 마음(bicameral mind) 이론에 따르면,

고대인들은 지금과 같은 자아 중심적 의식(self-consciousness)을 가지지 않았다.

대신, 우뇌에서 나오는 신호를 좌뇌에서 ‘외부의 목소리’로 인식했다.

이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로 해석되었고, 사람들은 이를 실제로 듣고 따랐다.


즉, 신이 직접 말했다는 성경 속 장면들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했던 현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 신의 목소리는 왜 공통적이었을까? – 집합적 표상과 상호주관적 실재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만약 신의 목소리가 단순한 환청이라면, 사람마다 다 다른 신을 경험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같은 문화권에서는 동일한 신이 숭배되었고, 동일한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집합적 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과 **상호주관적 실재(inter-subjective reality)**이다.

① 집합적 표상 – 사회가 공유하는 개념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집합적 표상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믿음과 개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국가






이런 것들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사회가 그것을 인정하고 따르기 때문에 현실에서 작동한다.
고대 사회에서는 이 역할을 신이 맡았다.

사람들이 같은 신화를 믿고, 같은 신의 이름을 부르며, 동일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면, 그들의 무의식 속에서도 동일한 신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같은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문화적으로 형성된 집합적 표상의 결과일 수도 있다.

② 상호주관적 실재 – 인간이 공유하는 현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상호주관적 실재(inter-subjective reality) 개념을 설명했다. 이는 개인이 아닌, 다수가 믿고 공유하는 개념들이 현실을 형성하는 원리다.
예를 들면,

돈은 단순한 종이조각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가치를 지닌다고 믿기 때문에 실제로 작동한다.

국가는 단순한 개념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법을 따르기 때문에 현실에서 존재한다.


이 개념을 신의 목소리에 적용해 보면, 고대인들이 들은 신의 목소리도 단순한 개인적 환청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실재였을 가능성이 있다.

3. 신의 목소리에서 국가와 법으로 – 현대적 변형

고대 사회에서는 신이 왕에게 직접 말을 걸어 국가를 운영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와 법이 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즉, 신의 목소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었을 뿐이다.

과거: “신이 왕에게 직접 명령을 내린다.”

현재: “헌법과 법이 국민에게 권리를 부여한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보면, 국가, 법, 돈도 우리가 공유하는 상호주관적 실재일 뿐이며, 우리가 그것을 믿고 따를 때만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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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신은 사라졌는가,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는가?

줄리언 제인의 이론과 상호주관적 실재 개념을 종합해 보면, 고대인들이 들은 신의 목소리는 단순한 환청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유한 실재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대에는 국가, 법, 돈 같은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 신이 더 이상 왜 직접 말하지 않는지 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신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더 이상 신을 ‘목소리’로 듣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헌법의 목소리, 국가의 명령, 경제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과거에 신이 왕에게 속삭였듯이, 오늘날에는 법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우리는 더 이상 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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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Julian Jaynes, 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

Émile Durkheim, 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

Yuval Noah Harari,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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